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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과우리의역사


장난과 우리의 역사

부제: 장난학의 사적고찰

장난은 창의/창조의 근원이며, 창조는 존재의 근원이다. 모든 것은 장난으로 부터 시작했으니 우주를 이해하고, 소우주인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난을 아는 것이 그 시작이고 우주를 바꾸고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는 장난을 실천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 하겠다.

모든 학문의 기초이며, 모든 삶의 행위의 기초인 장난을 우리의 선조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으며 활용해 왔으니 그 역사에 대해서 많이 남아있지 않은 기록이나마 모아보고 정리해 보고자 한다. 혹, 왜곡되어진 장난의 역사를 실제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장난의 과거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인위적인 조작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흥부와 놀부라는 유명한 전래동화는, 장난을 좋아하는 놀부를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며,
벌을 받는 다며, 왜곡을 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은 선조들은 장난을 좋지 않게 생각했으며, 이런 이야기를 통해 장난의 확산을 막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의 이 이야기가 나온 시점을 다시 한번 되집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고증되지는 않았지만, 이 흥부와 놀부라는 이야기는, 기원전 약 200 년경에 발생했으며, 기원전 150 년 경에는 널리 알려졌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자 그럼 기원전 150 년 경이 언제인가. 바로 고조선이 멸망하기 40~50 년전경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추측을 한가지 할 수 있다. 바로, 그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중국 한족이 고의적으로 배포한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가 배포된 후에, 기원전 100 년, 고조선은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추측이다. 특히 그 후에는 중국 대륙을 차지했던 우리 민족의 국가가 발해를 제외하고서라면 없었던 만큼, 이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이며, 모든 힘의 근원인 장난을 잃어버린 우리의 민족이 얼마나 나약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장난은 그 후 거대해진 중국과, 근대에 들어서는 일제에 의해서 많은 억압을 당해 왔으며, 우리 민족의 기력도 약해져만 왔다. 우리는 이에, 장난을 되찾고, 민족의 기력을 회복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현재 , 힘의 논리나, 기술적으로 타 강대국/선진국들에게 복속되어 있는 한국의 주권을, 한국의 자주성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장난이 왜곡되어진 역사가 여기 있다면, 우리의 장난의 역사, 우리민족의 장난 존재의 증거는 어디있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이제는 우리의 장난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장난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으나, 부족 사회에서부터 전해내려온 축제의 기록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우리에게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마한의 춘추제등의 유명한 축제가 존재했으며, 또, '어느 부족사회에서나 일 년에 한두차례의 대회를 열고, 제천의식을 거행하면서, 부족의식을 연마하고, 가무 백희를 연행하였다' 라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장난에 대한 우리 민족의 선진의식을 엿볼수 있으며, 이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위서 먹으리' 라는 지가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고대 가락국에서 김수로왕을 맞이 할 때 불렀던 노래이며, 사람과 사람의 장난 뿐만이 아니라, 동물과 교감하는 장난, 즉 이미 장난의 이치를 모두 깨닫고, 세상 만물의 이치를 모두 깨달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대인들의 장난학의 깊이가 현세의 우리보다 더욱 뛰어났으며, 이런 뛰어난 이들이 가락국을 세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건국신화라 하겠다.

조금 더 역사를 따라 흘러내려와 보면, 오성과 한음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이 두 분은 역사에도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며, 어린 시절의 장난의 대가로도 유명하다. 이 두 분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이 시대에도 장난의 부흥운동이 일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오성과 한음은, 그 결실중 하나였으며, 이를 암시하는 것으로 오성과 한음이 밤중에 화장실에 갔을때 그 절의 스님이 화장실에 숨어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성과 한음이 장난학의 대가인 그 스님의 장난학을 전수받은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통해 , 이 시기에는 장난학을 경시하지 않았으며, 부모들은 장난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장난학의 대가인 고승들에게 자식을 맡기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고승들은 삶과 진리에 관한 깊은 수행을 하다, 문득, 모든 것을 깨닫고 장난의 근본됨을 알아내고, 장난학에 매진했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현세의 장난학자들은 좀더 깊은 연구를 위해 종교서적들을 경원시하지 말고 주의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


이런 고승에게서 장난학의 조기 교육을 받은 오성과 한음은 어린 시절 뿐만이 아니라. 훗날에도 장난학에의 열의를 놓치지 않았으며, 장난학에 관한 많은 서적을 출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아쉽게도 일제에 의해서 제거당하거나, 그들의 장난학적 연구를 위해서 압수당했으며, 다음과 같은 말만이 전해진다.

"나는 장난을 알고, 모든 것을 알았다. 하나하나의 깨달음이란 장난이라는 근원적인 깨달음을 알지 못하고서는 부질없는 것이며, 장난학적 사고를 통해서, 쉽게 볼수 없는 현상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

"본질적인 장난의 시도는 경건해야 하는 것이며, 그 성공에 대해서도 겸허하여야 한다. 장난의 즐거움을 가벼운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존재와 상호작용하는 근원적이며 고차원적인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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