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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


잠을 안자?

안자는 기원전 305년 한반도의 마한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한국 장난계의 성인이다.

안자의 출생

많은 성인들의 출생이 미천한 것처럼, 안자 역시 미천한 출생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당시, "패수의 열전"으로 큰 참화를 겪은 수많은 난민들이 마한으로 밀려들었다고 한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패망한 나라 장군과 십장 이상 병사들과 그 가족들은 노비가 되어야만 했으므로, 수 만명의 노비들이 마한으로 넘어 들어왔다. 이들 노비들은 자신들이 대규모로 노비가 된 것에 불만을 품고, 왕왕 "만민 평등 사상"을 품고 있었으므로, 큰 문제가 되었다.

이에, 마한의 장군, "오디서가미"는 병사들을 이끌고 1만 5천명의 난민 노비들을 사냥하여 줄줄이 포박하고 한 곳에 수용하였다. 당시 수용된 노비들에 대한 대우는 그야말로 참혹했다고 전해지는데, 잔인하기 이를 때 없는 오디서가미의 패악앞에 이들은 그야말로 비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이에, 한 여인이 분연히 일어서서 술판이 벌어진 오디서가미의 연회장에 난입하여, 이 같은 사실을 규탄했다. 그 여인은 만삭의 몸이었는데, 여인을 본 "오디서가미"는 크게 감동을 받아, 병사들에게 상석을 비우라고 말하고는, 이 여인에게 그 자리를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앉아. "

그 날 이후, 노비들은 모두 해방되었고, 이 여인은 그리하여, 출생한 아이의 이름을 "안자"라 붙였다 한다. 모친이 노비였던 관계로 부친은 분명치 않으나, 아버지의 사상은 어머니의 사상과 정반대였다는 설이 전한다. 그리하여, "안자"의 아버지는 마한에 반감을 품고, 중국 한나라로 건너 갔으며, 훗날 그 후예가 삼국지에 등장하는 "서서"라고 한다.


안자의 성장과 학습

안자는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화전민으로 살았다고 한다. 안자는 총명하였으며, 항상 세상 만물의 이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어릴적 부터 책읽기를 즐겨했던 안자는 왕실 서고에 마당쓸이로 들어가서 몰래몰래 책을 읽혔다. 하루는 안자가 책을 몰래 읽다 당시 관원에게 들키었다. 관원이 꾸짖어 말했다.

"어찌 마당쓸이 따위가 서고에 함부로 들어오느냐. 여기, 문앞에 크게 적어 놓은, '출입엄금 보안철저'가 안보이느냐!"

안자가 말하였다.

"잘... 안 보입니다. 특히, 보안철저 할 때 '안'자 가 안보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 관원은 크게 감복하여, 안자에게 서고 출입패를 주고, 안자 에게 직접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관원의 성은 '방'이요 이름은 '석'이라 전한다.


안자의 입신

안자는 미천한 가문의 소생이었으나, 방석의 가르침에 따라 그 학문이 일취월장하여, 어느 새 궁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안자에게 이런 저런 것을 묻게 되었다한다. 이 중에 안자가 입신을 한 배경이 있었으니, 그것은 당시 왕궁의 실세였던 의자공 소파의 지원 덕분이다. 소파는 소씨 세도의 정점에 있는 인물로 딸 셋을 국왕에게 시집 보내고, 스스로의 영지에 1만의 병사를 거느린 대제후였다.

소파가 어느날 서고에 들어 직접 책을 찾아 보다가, 근심하여 말했다.

"어찌 이 많은 책들을 읽어 보았건만 백성들을 다스릴 좋은 묘책이 없단 말인가."

이를 들은 안자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백성들을 끌어 안자. "

이 말을 들은 의자공 소파가 크게 놀라 물었다.

"내 방금 무어라 하였느냐?"
"백성들을 다스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식처럼 끌어 안아 그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여긴다면 그 보다 좋은 방법이 없으리라 소인 생각하기에 무심결에 말이 나왔습니다."

의자공이 그 이후, 안자의 성명을 묻고 그 자리에 앉아 국정의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열 두 가지 물음을 구하였고, 이에 안자가 명쾌히 답하였으므로, 의자공은 그 후로 때때로 안자를 찾아 많은 일을 의논하였다. 그리하여, 안자는 왕실 서고의 고감이 되었으며, 한편으로 의자공의 가신으로 소재학의 벼슬을 하였다.


안자의 방랑

이리하여, 안자의 생활은 풍족해 졌고, 안자의 도움으로 의자공이 선정을 펼치지 마한에서 안자의 명성은 높아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안자가 무심히 길을 가다가 어느 움막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움막에는 젊은 부부가 잠을 자고 있었다.

여인이 물었다.

"자?"

남편이 답한다.

" 안 자."

무심한 남편의 목소리에 크게 놀란 안자는 무례를 구하고 움막의 부부에게 백성들의 처지를 물었다. 안자는 선정을 베풀어 많은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하나, 그 때 안자는 인간에는 본질적인 불평등과 삶의 고난, 죽음의 번뇌가 있음을 가슴 깊히 느꼈다.

여기에 회의를 품은 안자는 의자공 소파에게 나아가 벼슬을 내어 놓고, 세상의 도를 구하기 위해 방랑을 할 것을 말하였다. 의자공 소파는 크게 슬퍼하며,

"지금, 소재학이 떠나면 나는 삼한일통의 큰 뜻을 누구와 이룬단 말인가."

의자공은 크게 슬퍼하면서, 안자를 떠나보내었고, 안자의 방랑 생활이 힘들지 않도록 안자에게 좌석후 의 봉작을 내렸다.


안자의 사상

안자는 관직에 있을 때 이룬 학문을 바탕으로 천하를 방랑하며 도를 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깨달음을 널리 전파하였다. 안자의 사상은 당시 유학계에서 안자라 불리웠던 공자의 수제자 안회의 사상과 흡사한 면이 있으나, 안회의 사상이 지나치게 현실 문제에만 집중된 특징이 있었다면, 안자의 사상은 " 앉아서 천리를 본다"로 대표되는 심안의 철학적 고찰이 깊었다하겠다.

안자는 바다 건너 탐라에 나아가 머물 때 특히 많은 것을 깨달아, 이를 저술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고대 장난학의 정수이자, 장난 철학의 정본이라 불리우는 안씨잡문이다. 이는 훗날 불면경(佛面經)으로 불리우게 된다.


안자 사상의 전파

안자의 사상은 해외로도 급격히 전파되어 나갔으므로, 이후 많은 고대 종교의 전설에서 안자를 숭앙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고대 인도 힌두교의 경전 안즈나서나(Anzna Suna)에는 석가모니, 즉 고타마 싯타르타를 서술한 다음, 그 다음에 고구마 싯다운이라는 성인을 소개하는데, 이는 마한의 안자라는 것이 정통 학설이다.

한편, 성경의 야고보는 동방에서 온 지식인들로부터, 극동의 사상을 서술한 책을 선물 받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거기에는 "깨달음을 얻은 안자" 즉, 쪼그리고 안자(Zogrigo Anza) 라는 성인이 등장한다.

또, 로마 신화에 편입된 "지혜의 신"은 동방의 포질라지아라는 이상향에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신의 이름이, 포질라지아의 안자 즉, " 퍼질러저 안자(Fozillazia Anza) "이다.


안자의 죽음

안자의 명성이 드높아가자, 위협을 느낀 수많은 기존의 학자들과 고대 제정일치 제왕 질서를 옹호하는 정치 세력들은 안자를 탐탁찮게 여기게 되었다. 안자의 후견인이었던 의자공 소파의 사후, 소씨 가문은 그 아들 형제들에 의해 분리되었다.

첫째 아들 련(聯)은 북쪽의 실력자였고, 둘째 아들 금(今)은 중부의 실력자가 되었다. 셋째 아들 세지(世地)는 학자가 되었고, 넷째 아들 고기(高氣)는 안자를 따랐으므로 안자의 제자가 되었다.

마지막 다섯째 아들 변은 남부의 실력자였는데, 남부 지역의 경제 상황이 흉년으로 급격히 악화되었으므로, 정치 불만을 품은 자들이 안자에게 의지하는 일이 많아졌다.

의자공 소파의 다섯 아들들 중에서도 막내 소변은 가장 더러운 자였다. 그는 의자공 소파가 안자에게 좌석후의 봉작을 내린 것을 악용하여 안자의 영지에서 부정 불륜 사건을 벌였다. 그리하여, 첫째 형 소련과 둘째 형 소금을 설득하여 안자에게 불륜사건의 책임을 물어 사약을 내릴 것을 종용하였다.

첫째형 소련은 자신의 라이벌인 만주지역의 우사(Usa)라는 군벌과 겨루는 데 신경을 쏟고 있었고, 둘째형 소금은 본시 성격이 소심하여 이런 사건에 자신의 재물과 군대를 소모하지 않으려 하였다. 결국 안자 제거가 뜻때로 되지 않은 소변은 스스로 군사 200 여명을 이끌고 당시 서부 해안지방을 방랑하고 있던 안자의 일행을 급습하였다.

소변이 안자에게 물었다.

"너의 영지에서 불과 16세의 소년이 13세에서 18세에 이르는 처자 40여명과 더불어 음행을 일삼은 일이 일어났다. 더군다나 죄인의 변으로, 이는 너의 사주를 받은 일이라 하니, 이 천인공노할 일에 제후인 너는 죽음으로서 사죄하라."

안자가 답하였다.

"언젠가 나에게 술에 취해 맑은 정신을 잃은 41세의 여인이 나타나 동침을 청한 적이 한 번 있다. 그나마 나는 일언지하에, '아줌마와는 안 자 ' 라고 거절하였다. 내 하늘을 우러러 티끌만한 부끄러움 없다."

그러나 안자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였고, 그로부터 3일 동안 안자 사상의 정수를 압축한 불후의 명곡 안자요 라는 노래를 작곡하였다. 이 노래는 무려 2시간 동안이나 지속되는 긴 합창곡으로 가사 속에 안자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거니와, 긴 곡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교향악과 같은 감격을 주는 아름다운 명곡이다.

소변은 안자를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뜨거운 철판위에 묶어 세워놓았는데, 안자는 철판위에 서서 태연자약하게,

"서있으니 다리가 아프다. 좀 앉자."

라고 요구하는 말을 끝으로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안자 사후

안자가 죽자, 의자공 소파의 넷째 아들이자 안자의 제자였던 소고기는 형제의 정을 이유로 간곡히 소변에게 청하였다.

"스승님의 시신만이라도 제대로 수습하게 해 다오."

소변은 안자의 시신을 없애버리려 하고 있었으나, 마침 소식을 들은 의자공의 셋째 아들 소세지 역시 글을 써서 소변의 죄를 규탄하였다. 이에 소변은 안자의 시신을 순순히 소고기에게 넘겼다.

안자의 죽음에 백성들 중에는 슬퍼하지 않는이가 없었으며, 평소에 주색을 밝히기로 이름이 높았던 소세지는 백일 동안 주색을 금하고 하루에 한 편씩 안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자의 업적을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또한 소고기는 안자의 수많은 언행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내었으며, 수많은 안자의 제자들에게 소씨 가문의 재산을 털어넣어 후원하였다. 이렇게 소고기의 후원을 받은 학자들이, 훗날 삼한 통일의 시급함을 주장한 한우(韓友)파와 농사 기술 개량과 치수의 시급함을 주장한 수입(水入)파의 원류가 되었다.

안자는 소변에 의해 사후 좌석후의 지위를 박탈당하였다. 그러나 형제의 난으로 소련의 세력이 망한 후 승자인 소금에 의해 소변이 죽임을 당하자, 곧 안자는 복권되었다.

그리하여, 사망후에 안자는 곧 좌석후에서 좌석공으로 추존되었으며, 후에 마한 국왕의 칙령에 따라 철학과 지식을 널리 퍼뜨림을 기려, 철야왕(哲野王)에 제수되었다. 그리하여 정식 시호는 철야왕 안자이며, 높여 이를 때는 안자제(帝)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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