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Changes
  FrontPage
TitleIndex  |  RecentChanges
 

도에대해아세요


퇴고 전의 소설입니다.
* 경고, 일단, 페이지 길이를 잘 보시고, 읽다가 시간 낭비라고 파악되면 바로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시오. 이건, 최후의 경고요. 이상은 장난을 경계하는 선이다--노망



22세의 겨울, 2월경의 군입대를 앞두고, 노망의 마음은 싸늘하니 식어갔다. 하는 일들에는 열정이 시들고, 사랑도 자신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았고, 연애라곤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는 적적하고 외로운 삶에 회한이 느껴지는 때였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뒤덮었던 크고 작은 고난들과 더불어, 아, 이제 정말 재미없는 곳에 내팽게쳐 지겠구나...... 그것이 그의 생각의 전부였다. 생각해보자면, 그 시기의 남자는 아무런 소속이 없는 인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직, 군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휴학중이니 학생도 아니었다. 또한 다니던 교회에서의 그는 신앙심이 없는 습관적인 예배 출석자인 상황이었다.

1. 도대아들은 그를 세번 찌르다


1.1. 첫번째

일주일에 한번씩 고속버스를 타고 안산의 친척집을 찾아갔다.

때마다 고속터미널 옆의 광장에서 1시간 정도 책을 보거나 오락실을 누비면서, 시간을 떼우는 것이 내려가는 날의 노망의 일상이었다.

싸늘한 벤치에 앉아 노자 도덕경을 반시각쯤 읽었을 무렵, 져가는 석양을 등지고 검은 실루엣의 남자가 소리도 없이 앞으로 다가와 반갑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생애 첫번째로 도대아 아저씨가 다가왔던... 아니, 아저씨라기보다는 몇살 차이 나지 않는 그러나 사회생활은 일찍 시작한 타입의 안경끼고 귀염성이 좀 있어보이는 타입의 검은 피부, 작은 키, 동그란 안경, 그리고 상당히 싸보이는 양복을 입은 남자였다.

"도에 대해 들어보셨어요?"
"아니요."

그냥,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차를 타기까지는 약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고, 노망은 그 인간이 혹 노망같은 것이 든게 아닌지를 알고 싶어했었다.

진지하면서도, 잡티가 없었다. 그 인간은 타인의 허위에는 속더라도, 자기 자신의 허위로 타인을 속이지는 못하는 타입의 남자였다. 곧,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그가 진심으로 믿고 있는 말들이었다.

20분여를 이야기를 듣다가 이야기는 드디어 감동의 피니쉬를 달리고 있었다.

"2~3년 안에 모든사람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1994년 11월)
"호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도를 닦는 겁니다."
"아..."
"우리 선인님의 경우에는 아픈 사람도 바로 고칠 수가 있고, 축지법도 쓸 줄 아시며, 미래를 미리 보는 능력도 갖고 있는데, 나는 아직 도를 닦은지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 능력은 없답니다."

.......

감동의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진심을 받아들여주고 있었다. 몹시 감동한 듯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니,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30분 내내, 노망이 감탄한 것은, 그가 도장에서 '선인'이라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 전부를 하나도 여과없이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란 인간이 아무리 조롱조로 이야기를 받아도, 도체 그것이 조롱조인지를 파악하질 못하였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터미널 주변을 반나절을 돌아다녔을 것 같은 그 남자에게 큰뚜껑 라면을 사주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나와서 '도장'에서 기거하느라, 밥도 잘 못먹고, 잠도 잘 못자고 있는 것같았다. 단지, 그의 마음이 '도'를 전파하는 기쁨에 겨워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모든 현실적인 두려움이 그의 마음 바깥으로 흘려 사라진 중요한 이유였다.

"...혹시, 여자랑 자본 적이 있었나요?..." 그 남자는 지금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네에~" 그는 그런 대답마저도 신나했다.
"어떻게요?" 노망은 이 순간 손을 마이크를 잡은 것처럼 내밀어서 인터뷰를 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는 그 마이크를 쥔 손을 쥐고서는, '하나 둘... 마이크 테스트, 아, 아....'하면서, 노망의 눈을 카메라인양 바라보았다.
"옛날에 회사 다닐때 회식 마치고, XX촌에서요, 단 한번"
"어땠나요?"

노망은 어느새 진지한 리포터를 흉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진짜로 TV에 출현하고 있는 것처럼 신나했다.
"짜릿했었지요~~"

마이크를 쥔 것처럼, 내민 노망의 손이 그 남자에게는 정말로 마이크를 쥔 리포터의 손이 되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아무말이던 기쁨에 넘쳐서 다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다행이 더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다가온 차시간.

"이만, 나는 가보겠습니다."
"오늘은 안되더라도, 다음에는 꼭 도장에 가보세요. 의통을 하던 도통을 하던, 가봐야죠."
"아저씨처럼, 같은 요일에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각에서 세번째로 '도'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따라 한번 들려보겠습니다."
"꼭 가보세요."

그리고 정확히 3개월 하고 두 주 뒤에 그 말을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것은 노망 이 자신에게 건 암시이자, 함정이자, 일종의 최면이 되었다......

1.2. 두번째

매주 내려갔으므로, 당연히 그 다음의 그 요일의 그 시각 쯤에 노망은 그 벤치에 앉아 NoSmoke:세계의끝과하드보일드원더랜드를 읽고 있었다.

첫 눈에 NoSmoke:도대아일거라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종류의 남자가 하나 앞을 지나쳐가듯이 걸어가고 있었다. 세련된 골덴 양복에 깔끔한 앙골라 스웨터, 목 뒤까지 깔끔하게 내려온 머리카락, 예리한 눈동자, 고등학교 때의 그 깔끔한 수학 선생이 떠오르는 정결한 계산 반듯한 외모. 날렵한 몸매, 반짝이는 구두의 소유자였다.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이 드디어 의식을 잃어버리는 순간 속으로 노망은 몰입하고 있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오기 전까지, 노망은 그가 설마 그 초식을 사용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긴 칼을 앞에 대고 조심하다가, 이도류의 짧은 칼날에 심하게 찔린 기분이었다.
"음, 제가 전에 비슷한 말을 하는 분에게 같은 요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3번째로 만나는 같은 분이 있으면, 같이 도장에 가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이 두번째이므로, 아직 그 때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도류의 짧은 칼날이 뽑혀나가고, 그는 비틀거리며, 다음번의 사냥물을 찾아 걸어가 버렸다.

만약, 노망이 이 말을 되풀이 해서 이렇게 한번 더 써먹지 않았다면, 그 주문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 비극도......

1.3. 역전 변형된 착각의 삼고초려


그 다음주의 같은 요일, 그리고 같은 시각, 같은 벤치에서 세번째로 만난 사람은 여자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억양이 상당히 독특하였다, 한마디로 듣기 좋았다, 그러니까, 귀여웠던 것이다. 그 목소리는 지적인 음색이 담겨 있었고, 꼬리가 살짜기 올라가는 애교떠는 뉘앙스가 묘하게 버무려져 있었다. 그리고, 쳐다본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입술은 도톰한 분홍색이었으며, 스웨터는,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는 풍만한 가슴으로 부풀어 보였다. 코는 그녀의 명민함을 대변하듯이 프라이드 높게 서 있었으니, 그토록 재미있게 읽고 있었던, 댄스댄스댄스를 접어 뒤에 치우고. 최대한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홍색의 패딩자켓과 약간 짧은 치마 아래로 추위때문에 약간 떨고 있는 다리가 보였다.

"에대해서아세요?"
"말씀해보세요."
"이렇게 흔쾌히 받아주는 분은 처음이예요."

그렇다, 이성이 마비될 수 있는 이성이 왔는데, 쉽게 안 받아줄 수가 있겠는가, 사회에서 일탈한 듯한 놈이 더더군다나. 그리고 그렇게 노망은 그 비극의 수렁텅이로 천천히 걸어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도'에 관한 이야기에는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해방식이 섞여들어 있었다. 최소한 객관성이라는 것이 어른거리고 있었고,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도장에서는 이렇게 말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진행되어 가는 와중에 노망은 자기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이 세상은 종말까지 5경의 시대로 구분되어 있다고 도장에서는 말하고 있어요. 지금의 시대는 꽃 "화"의 시대로 이전의 철 "금" 문명의 시대를 넘어 바야흐로 '기'나 '도'같은 정신문화를 찬란히 꽃 피우지 않으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하죠."

이제 이야기가 좀 더 씨알이 먹히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복잡한 사람은 '도'라는 것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지식을 통해 득도라는 개념에 접근하고자 하고, 앞 서의 단순한 사람은 분명히 신비주의에 호도되고 종말론을 거론하는 공포에 의해서 '도'라는 것을 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로구나.'
물론, 이건 노망이 나중에나 하게 된 생각이다. 그녀의 눈과 머리카락과 볼과 목, 귀, 목소리, 숨결을 뇌 깊숙히 각인시키느라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데, 무슨 자기 객관의 생각이 있었겠는가?

이른바 국내 K 뭐대의 원예 학과를 졸업했다고 말하고 있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를테면 말이 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교감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가는 체온이 있었고, 바라보는 눈을 쳐다보다보니 볼이 약간 홍조를 띠게 되었다.

"정말로 사람을 살리는 것도 득도하면 알게 되는 것인가요?"
"강증산 선생이 지은 책에 그 내용이 다 나와 있다고 해석하고 있는 중이지요, 이 책을 '전경'이라 부릅니다."
"그 책은 이른바 이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요?"
"후천개벽의 시대가 다가와 이제까지의 하늘이 닫히고 다른 하늘이 열린다고 해요. 시대의 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어 간다구요. 이전까지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하고 뒤에 그 성패를 신이 결정했다면, 후천개벽 이후에는 신이 모든 것을 다하고 사람이 그 성패를 결정한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어느날 갑자기 의통한 사람들과 도통한 사람들을 제하고는 모두 죽어버린다고 하죠. 의통을 하는 사람들은 제주도에 세워진 27층 건물의 의대에서 수도를 하여, 그 때 죽어 있는 사람들을 만지기만 하는 것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하지요."
하면서, 그녀는 노망의 팔뚝을 쥐었다. 그는 그순간 후끈하게 온 몸으로 열기가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공포에 감염되는 것은 결국에 모두 똑같은 것이로구나' 이것은 그가 나중에나 하게 된 생각이다.

그리고 그는 근 반년만에 여자와 이렇게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없었다고 느꼈다. 그녀는 그녀가 살아오면서 얻은 지식을 동원하여, '도'를 닦는 것에 대한 나름의 의미부여를 성실히 해온 상황이었다. 그 성실함은, 적어도, 그 성실함은 그녀가 도대아라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오늘 도장에 데려가기로 한 사람이 있나요?" 석양이 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차가 떠날 시간은 임박한지 좀 되었던 시점이었다.
"아니요, 아무도 없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사람도 노망님이 처음이예요."
"이제 나는 차를 타러 가야만 합니다."
"아니, 차를 타러 가는 것보다 지금 도장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일 수도 있어요."
애가 타는 표정, 노망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 마음의 간절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차값이야 얼마든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야만 한다고 느꼈다.
"이 시간 쯤이면, 야구로 쳤을 때 사람들을 만나 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몇 회 정도일까요?"
"아마도, 9회 말 정도"
"점수는 올렸나요?"
"빵점이예요."
그리고 노망은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러 그녀의 목에 걸쳐주었다. 그녀의 눈망울이 놀람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동시에 볼 위로 떠오른 빨간 기운을 놓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9회말 투런 홈런을 치게 해줄께요. 미정씨를 만나기 전에 앞 서 두사람이 내게 도를 알리려고 했을 때, 같은 요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세번째로 '도'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따라 도장에 가겠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미정씨는 바로 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말이 그녀에게 감동으로 다가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추위, 외면, 그리고 멸시의 고통을 당하다가, 드디어 따뜻한 응대를 해주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이니까. 동시에 그 말을 하는 노망의 볼은 빨게져 있었다.
"목도리는 다시 만날 때 돌려받겠습니다."
필연성을 부여한다, 서둘러 사라진다, 그리움을 남긴다...... 다, 노망Jangnan:소망하던 것들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내용을 시현한 배워서 남주랴라는 속담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멋지게 돌아가기전, 가방에서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어서, 연락 가능한 번호를 전달하였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마음으로 고속 버스를 타고 고속 도로를 탔다.
"9살 많은 여자라......"
도대아들이 삼고초려를 하고 드디어 피라미 한마리를 고래로부터 내려온 '짝퉁 도교'의 흐름이라는 물 속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노망은 자기가 어떤 보이지 않는 흐름에 의해 뭔가로부터 선택을 받은게 아닐까라는 착각의 늪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갔다.

그리고서 비극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2. 짓이겨짐

2.1. 입도식

집으로 미정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노망의 어머니는
"그 여자 목소리 진짜 소름끼치더구나, 아주, 그냥 마지막에 갖은 애교랑 교태를 다 떨더구만, 얘, 이 여자 뭐하는 여자니?"
라고 하면서 질려버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여자 전화가 왔으니, 그만큼의 역반응이 있으리라 생각을 했으나, 그는 약간 불쾌하였다.
"무슨 상관이야, 교회 누나야 그냥. 말투는 성극에 많이 출연하다보니 그렇게 된거구."
그리고 전화를 받자마자, 저 멀리에서 노망을 만나지 못해서 안달이 난 듯한 음색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였다.

약 30여분 후, 그는 압구정동의 한 곰탕집 앞에 서있게 되었다. 2층 택을 개량하여 만든 식당, 그리고 그 2층 역시, 가정집을 개량한 '도장'이 있었다.
'태권도 도장을 다녔던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도장이란 곳에 와보는군.'

가정집의 거실을 이른바 '교화'장소로, 그리고 각각의 방을 수도를 하는 곳으로 만들어 놓은 50-70평 규모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어설피 잡혀온 사람들이 그곳의 '선인'이라는 머리가 희끗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망은 비교적 단순한 사람들이 어떻게 끌려왔는가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다.
"조상신들이 도인들을 이끌어, 복을 찾게 해주고, 업을 풀고, 공덕을 쌓게 해주기 위해서 당신을 만나게 해주었다. 모든 조상신들이 당신이 잘 되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등등의 인간의 깊은 허영심을 건드리는 말들로 그들을 붕띄우는 것이다. 특히나 만사가 잘 안풀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들이야말로, 모든 것을 합당하게 정리하도록 이끄는 말들이다.
'이렇게 안 풀린 것이 도를 닦아 풀리라고 그런 것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 끌려오는 것은 간단해진다. 좀 더 확장하자면, 전도를 하는 사람이고, 불교를 전파하는 사람이고, 천주교를 믿으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의 본질은, 그 인간의 깊은 허영심을 끌어올려, 신이라는 대상에 대한 내면적인 기대감과 마주하게 해주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로또 당첨금은 너만을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이 모든 종교의 전도활동의 본질이라면, 그 본질일 것이다. 좀 더 나아가서 이야기 하자면, 세일즈의 본질이기도 하고, 인간에게 작용하는 단체나 조직을 만들어가는 본질적인 유혹법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 허영심의 기반이 마냥 허위인가 아니면 실체에 가까운 그 무엇인가가 보다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그나마의 기준이 되는 것일 따름이다.

이 '도장'이 말하는 도교는 다신교와 또는 셔먼이라는 것을 도교라는 현대 사회에서도 은근한 매력과 나름의 합리적인 설명이 이루어진 철학을 은근슬쩍 가미한 우리나라의 또다른 기복 신앙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허영심의 본질은 꿰뚫어지지가 않았다.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부여한 주문에 걸려, 3번의 같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하나의 필연 비스무레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그의 무의식이었고, 목적을 여자에게 둔 것이 분명함에도 사회 도덕의 정의를 지키고 있다는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도교'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경험을 얻기 위해서 도장에 간 것이다라는 논리를 품고 있었다. 어떠했든, 그는 자기 자신을 모종의 허위들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바깥쪽으로는 그들의 허위에, 안 쪽으로는 자기자신의 허위에. 그러나 그런 생각들이야, 지금에 하는 것이고, 그 때 노망은 입도식을 하기 위해서 내야한다는 성의조의 돈으로 3,000원을 내밀었고, 사업이 망해서 왔다는 한 40대의 아저씨는 십수만원의 돈을 내밀었다. 그리고, 음식이 갖춰지는 동안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로 약간 들떠있었다. 그 아저씨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2.2. 신비

선인의 생김새는 마치 개구리와도 같았다. 튀어나온 두눈에 큰 첫째마디들을 가진 손가락들 양말 모양으로도 판별되는 커다란 발가락들 그리고 쫙벌어진 입. 그는 그 입으로
"도를 닦거나 입도식을 치르게 되면, 그 방안에 기가 내려서 그 방안에 거하는 것들에 윤기와 독특한 맛을 주게 되며, 수돗물은 물로 그 결정이 변화하고, 방안에 조상신들이 가득히 들어차서 그 도를 닦기로 한 사람들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노망은 일단은 믿을 수 없는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행동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으므로, 행하는 것이 곧 도이다라는 그들의 계율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방안에는 진리를 깨달은 이로 표현되는 강증산의 그림이 음식을 잔뜩 차려놓은 상 위에 놓여져 있었으며, 촛불이 밥상 뒤의 병풍 앞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눈을 감고 도인들이 외우는 108자의 주문을 들으면서 입도식이 시작되었다.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구천응원...'

1시간 정도의 수도의식이 있은 뒤에 그를 포함한 3-4명의 사람들은 옷을 벗고 믿기 힘든 이야기들로 열변을 토하는 도인들과 음식을 먹으면서 동시에 상식적으로 힘든 것들을 믿음으로서 좀 더 득도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수돗물을 따라놓았던 주전자를 들어서 물을 따라 준 것을 마시는 순간, 노망은 그 물 맛이 수돗물 맛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그 수도를 하는 동안 그 주전자를 바꾸는 따위의 어설픈 짓거리들은 할 리가 없었다고 여겼는데...그 물 맛은 분명히 수돗물 맛이 아닌 맛있는 냉수의 맛이었다. 그리고 수도 전에 비해서 보다 기름지고, 윤기가 흐르는 것 같아 보이는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무언가 노망의 내부에서 바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주문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은 단지 108자에 한글을 달아 넣은 것들이었다. 한자로 그 음에 대한 뜻이 매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주문을 외우기 위한 편의적인 음들이 달려 있을 뿐이었다. 이것을 외우는 것이 이러한 현상들을 일어나게 만드는가?

2.3. 신비에 대한 해석

이미, 노망은 암시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수도를 마치고 나면 음식들이 변해있을 것이란 말과 수돗물 맛이 변해있을 것이란 말같은 것을 듣지 않았다면, 그러한 일이 벌어질 이유조차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무슨 소리냐면, 만약, 허리가 굵어진 느낌이 들고 심폐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비슷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라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최면을 위한 암시가 있었으므로 암시에 따른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인데, 그 암시들이 없었다면, 수돗물 맛이 당연히 수돗물 맛이었을 것이고, 음식은 사온 그대로의 맛에 불과하다고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렇다면, 최면술을 아는 것이었던가? 아니다. 그것은 선각과 후각이라는 들어온 대로의 계층구분을 하는 도장의 구성에 의해서 먼저 온 사람들이 되풀이 해서 뒤로 전달해온 내용이었으며, 그것이 일종의 '최면'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앞에 있거나, 어쩌면 아무도 없을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아무런 의도 없이도, 도장 내에서는 모종의 신비스러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암시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다른 종교 단체들 내부에서도 행하여지고 있는 일들일 것이다. 안수기도, 신앙 간증, 그리고 순복음 교회 같은데에서 매주 행해졌던 병을 치유하는 현상들은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NoSmoke:PlaceboEffect)라고 하는 성직자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최면에 의한 효과일 수 있다.

물론, 그는 그 당시에 일체 그런 것을 알지 못하였다.

3. 선각과 후각

3.1. 사이좋은 두사람

노망미정을 선각이라고 불렀다. 먼저 깨달은 자라는 의미로서, 그리고 미정노망을 후각이라고 불렀다. 나중 깨달은 자라는 의미로서. 그리고 입도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노망미정과 커피숍에서 3~4시간에 이르는 대화를 나누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은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도인에 가깝고, 그 소설 속에 나오는 대사들이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내용들과 닮은 것으로 보아, '도'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꼭 도장이 아닌 곳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푸는 것을 미정이 감동에 찬 눈으로 지켜보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어설픈 심리학 지식과 이전까지 읽었던 책들을 모두 '도'라는 대상에 연결시키는 과정이었다. 신비로운 현상 자체에 완전히 혹하고나니, 그 과정 중에 먼저 있었던 미정이 신비롭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수많은 말들을 늘어놓는 노망미정에게는 도장에 찾아온 사람들 중에 상당히 특이한 변종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 것 같았다. 그렇다, 누가 노자 도덕경과 날라리 작가 하루키를 연결시키겠는가 예전이었든 지금이었든 간에...어지간히 노망든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요 '도'라는 것은 먼저 수련했다고 항상 먼저 더 깨달아가는 것은 아닌거예요. 그리고 도에 도달하는 길은 산에 들어가거나 초야에 묻힘으로써만 생기는 것이 아니죠. 시장판 도라고 얘기해요. 단지, 도장이 있는 것은 그 수도하는 의식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집중력을 갖고자 하는 뜻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자리죠."
"그 도장에 선인들과 다른 몇몇 도인들이 기거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단지, 그 깨달음에 모든 것을 다 붓고 있는 것인가요?"
"그렇죠. 나의 경우에도 프랑스 유학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선인님의 말을 따라 한국에 남아 있는걸요. 선인님이 그런 말을 하셨어요. 앞으로 2-3년내에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이고, 이 때 도를 닦지 않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구요."
"나는 이제 3개월 정도 지나면, 입대를 해야되요."
"노망님에게까지 가지 말라는 말은 않겠어요. 내가 살려줄테니까요."

이때, 그는 자기자신도 모르게 미정의 손을 쥐었다. 그리고 옆자리로 다가가 앉을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비극은 연속되고 있는 것이다...

3.2. 애정의 곡선


그 이후로도 그 두사람은 꼭 붙어 같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도장은 아침 7시와 저녁 7시, 정오와 자정 네번에 걸쳐서. 거의 매일 노망은 수도를 하러가서 컴컴한 방에 들어가 촛불을 켜놓고 오로지 주문을 외워 머리를 맑게 하였는데, 이른바 교화시간이라고 하여, 전경을 해석하거나 도를 빌어 세상을 이해하는 작업을 하는 것에는 이른바 관심이 가질 않았다. QT라고 하여 교회에서 행하고는 하는 명상이 수도라는 이름에서 이곳에서는 수행되고 있는 것이고, 성경으로나, 상식으로나 그 어느쪽에서도 납득이 되지 않는 교화가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일종의 신비현상이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심신에 건강이 찾아온다는 수도가 나날이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었고, 이를테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도 왕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책을 보다보면, 하루키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도'를 찾고 있는 사람들처럼 그려지고 있죠. 이를테면, 그 상황에서 최적일 수 있는 행동과 말을 하는 것에 그들은 아주 능통합니다."
노망은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미정에게 건냈다.
"가져가서 읽어도 되나요 노망씨."
미정에 대한 애정이 점점 더 깊어갔던 이유 중에 하나는, 9살 연장자인 그녀가 단 한번도 존댓말 하기를 그만둔 적이 없었고, 노망을 어른답게 대접하고 있었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노망이 하는 이야기의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듣고, 그에 걸맞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말이 시작되면, 7시부터 밤 9시까지 그 대화는 그칠 줄을 몰랐다.
"무언가 얻고자 하면 먼저 주라고 하는 도덕경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그 한가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미정씨로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이 책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를 먼저 상대방에게 준다는 것은 상대방이 받은 것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어느새 말투마저 비슷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무얼 받고 싶은 건지요? 노망 후각님은?"

지금 생각하면, 그것들 중에 어떤 의미있는 통찰이 있었는지는 단 한가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노망은 그녀가 감동할만한 말들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것에 따른 이야기를 내뱉고 있었던 것 같다.
"최적의 인간관계요, 더 이상 좋아질 이유도, 그렇다고 나빠질 이유도 없는 아주아주 딱 좋은 그런 관계를 서로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녀는 눈을 빛내며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우리의 인연이라는 것을 도장에서는 여러생을 통해서 계속해서 접한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요. 우리는 아마도 이전 세상에서 만난 적이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만남은 때로 너무 좋았거나, 반대로 너무 나빴었을 거예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최적의 좋은 만남이 되기 위한 순간인지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렇지 않을까요 노망 후각님?"
그 눈빛은 노망이 느끼기엔 너무나 뜨거웠다. 그리고 휘어잡아오는 것 같은 목소리는 내내 귓 속 깊숙이로 부드럽고도 끈끈하게 파고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 도장이 제공하는 교화의 내용이 다루는 영역은 실상 대단히 넓었다. 불교적인 윤회설과 상제님이라 부르는 강증산을 '나는 길이요 진리라고 하는' 예수화 시킨 기독교적 색채와 이슬람의 강력한 의식 존중의 계율 그리고 셔머니즘과 기복신앙이 조합을 이룬 종합 선물 세트인 것이 바로 이 도장이 말하는 짝퉁도교였다. 그러나, 그 종합 선물 세트 안에서 노망의 진정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다름아닌 미정의 애정과 셔머니즘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배합은 실제의 삶 속에서 그렇게 크게 필요한 것은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는 그가 느껴보지 못했던 신비한 현상에 조금씩 말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극은 이제 바야흐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3.3. 이름의 운명적 파자 해석

여느때와 다름없이 교화 시간은 따분한 이야기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러니까, 선인들이라고 하는 도인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무척 진지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가 없다라는 생각에서 말을 하고 있었으므로, 어느 순간에는 그럴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이른바 감화력이 있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파자 놀음이라는 것은 재미 있는 교화를 펼쳐나가는 이야기의 한방식이었는데, 이야기를 듣던 중에, 이 '도장'에 또한 흐르고 있는 사상은 필연과, 숙명, 운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결정주의적인 사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례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한자를 끄집어 내어 이를 해석하고 있었다.

"朴 正 熙라는 이름의 한자를 분해하면, 열십(十)자와 팔(八)자로서...(중략)...18년간 사람들을 다스리고...(중략)... 한 일(―)자가 말하는 것처럼 단번에 이를 그칠 지자(止)가 보여주듯이 멈추게 되는데, 이는 신하 신(臣)자에 의해서 신하인 김재규로부터 불을 뿜는 화(火), 즉 총에 맞아 죽게 되어서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미 한자를 통해서 이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은 도인이라는 명칭으로 자신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 파자 놀음에 어안이 벙해진 표정이 되어버렸다. 전경이라는 책을 해석하는 논리는 다름아닌 이러한 방식의 해석이기 나름인데, 바로, 이 아귀가 딱 들어맞는 파자에 놀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 파자 놀음 속에 있는 어떤 숙명적인 암호 발견의 지혜라는 것이 도를 닦음으로서도 파악될 수 있다라는 아이디어를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납득시켰던 것 같았다.

파자 놀음을 보다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이러한 숙명론적, 운명론적인 해석에는 착실하게 따라붙는 오류들이 여러군데 숨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난 뒤에서였다.

'박'자가 18년간의 치세와 연관되는 것이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박씨들에게도 어느정도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정'자를 가진 사람들도 어떤 비극적인 결말과 유사한 맺음을 해야 하는데, 이름에 바를 '정'이 들어갔다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불화 자와 신하 신자라는 분해가 정당하려면 같은 한자를 가진 사람들의 운명도 같은 이치의 결과를 맞아야 한다. 그러나 이름에 그 한자를 사용했다고 다들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하나씩 파자를 해갔던 논리를 뜯어보면, 단지, 그것은 도장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무언가 숙명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라는 생각에 호응하기 위한 이야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라든가, 정체불명의 말들로 남아 있는 이른바 해석이 이미 내려져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 많은 동서양의 파자 놀음은 바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운명과 숙명, 그리고 결정론적인 인생관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달콤한 선물이다. 그 무엇보다도 그러한 파자놀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결점하나는 다름아닌, 그것이 이미 이루어졌을 때, 그 온전한 아귀가 맞춰지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지 그 전에는 그런 해석의 가능성 자체가 사실상 열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파자 놀음을 듣던 중에 노망은 이렇게 물어보긴 했었다.

"그럼, 내 이름을 한번 파자해 주십시요"

선인은 노망의 이름을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그렸고 약 4~5초간 생각을 하며 그 글씨를 쳐다보았다. 그 다음에 그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 이 이름의 울림을 들어보시지요. 기운이 가득히 들어있는 이름이 아닌가요? 벌써, 딱 '도'를 닦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바로 이 이름 안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망은 진지하게 또는 상당히 삐딱하게 그 선인의 이야기에 대해서 한쪽 입술을 실룩이며 들어올렸다. '적어도, 작명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도는 파악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제, 정말로 노망에게 남아 있게될 도장에 대한 미련은 단지, 두가지 뿐이었다. 그것은 미정 그리고 이제 또 하나 나타날 신비현상이었다.

비극이 갑자기 잠시 미루어졌다......

4. 묘지 옆에서

4.1. 유토피아와 신비를 꿈꾸며

교회에도 일주일에 한번 나가고, 도장은 매일 나가는 일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한달여가 흘러갔다. 도장에서는 입도식 이후에는 단 한번도 돈을 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노망에게는 이 사람들이 자본주의와는 상관없는 사회를 꾸며가는 사람들이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그곳에 와 있는 사람들은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오손도손 없는 가운데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싶기도 할 정도였으니까. 교화에서는 이른바 말도 안되는 엉뚱한 소리만 남발하였지만, 그래도, 도장이라는 곳에는 나름대로 유토피아의 꿈이라는 것이 살아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노망은 그 공동체의 그런 이상 비슷한 것이 조금씩 맘에 들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적어도, 직업화된 종교조직의 세계는 아니었다.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확고한 지위를 가진 도인이 인정받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자기 뒷편으로 많이 끌어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노망은 자신이 있었다. 한창, 신앙에 몰입했을 때는 전도같은 것도 거리에서 잘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꼬셔서 교회에 데려가는 일도 잘하곤했었으니까.

선인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인원 이상의 도인들을 입도 시켜야만 한다. 그러자면, 거리에 나가 포덕을 죽자고 해서 수십명 이상을 도장에 데려와야 하는데, 말발이 안통하면 사기성, 사기성이 안 통하면 외모, 외모가 안 통하면 다른 매력이 있어야 아마도 그런 성과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 불합리한 교화에 따라올 사람이 몇이나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혹이 그치질 않았다. 선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특출한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장점이 아마도 미정노망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발휘되었던 것 같은 "도"라는 대상과는 조금 비켜나간 입도의 이유를 만들어내는지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정노망을 데려온 뒤로 더이상의 포덕에 열중하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충분한 교화를 겪지 않은 후각을 챙겨서 포덕을 나가는 일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도장에 융화되고, 교화를 통해서 온전하게 도장의 논리를 잘 흡수한 도인이 아니면, 일단, 포덕을 시키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장을 다닌 뒤에 교화 시간에 질려버렸던 노망은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핑계로 저녁 7시의 수도만을 하고 집에 들어가기로 작정을 했다. 적어도, 제 정신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4번의 수도를 모두 마치고 4번의 교화를 받다가는 노망자신도 모르게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교화는 보통은 상식적으로도 올바를 수 있는 문구로부터 시작하나, 그 과정에서 귀신과 도인에 대한 신비가 되풀이 되어 이야기되고, 종말론이 반복된다. 2-3년 내에 사람들이 종말에 임하기 전에 도통하거나 의통하여 사람들을 살려야하고, 역사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되어야 한다는 그 황당무계한 이야기들......100년은 족히 지났을 그 강증산이라는 분의 전경에 있는 단어들로 세계를 이해하고, 연결이 안 되는 부분은 귀신과 환생을 엮어넣는다. 그건, 생각해보면, 하나의 납득할만한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한 몸부림일 따름이다. 선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믿고 있는 부분은 없으리라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암시를 주고 있었던 것 이외에는 아무런 신비한 능력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이 도장에 있는 그 이유, 그리고, 이렇게 도교를 전파하여야 할 이유를 그들은 끊임없이 만들어내어야만 했다. 그리고, 하루하루는 그것을 다른 도인들에게 납득시키는 일상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개구리 선인은 또 한번의 암시를 걸었다.
"때로, 도인들 중에는 수도 도중에 발바닥에서 불이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되거나, 자세를 취한 팔 주변에 기운이 빙빙 도는 것을 느끼게 돼."
그가, ~지요를 과감하게 생략하는 순간 노망은 불쑥 화가 났다. '왜, 갑자기 반말이야?'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많이 친해진 것은 맞는 탓에, 20세나 많은 삼촌뻘의 그에게 눈을 부라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나요?"
"물론. 노망씨도 곧 느끼게 돼, 그리고 그걸 느끼지 않는 도인은 거의 없어."
"오오..."
수도를 할 때마다, 노망 은 그런 현상이 자기 자신에게 벌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해보았다. 그러나 몇 주간이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문을 외우고 머리를 아무리 비워내어도, 그런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현상마저 벌어지지 않는다면, 도장에 나올 이유는 단지, 미정때문일 것이었다.

"미정선각님, 왜 노망에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건가요?"
"글세요, 나조차도 그런 일이 일어났던 적이 없었어요. 난, 도인들 중에 미간의 가운데에 3번째의 눈이 열려서 수도 중에 자기의 전생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아주 깨끗한 영상으로 전생의 자기의 모습이 보였데요. 마치 영화관에 앉아서 자기가 출연하는 영화를 똑똑히 보는 것처럼 말이예요"
'미정선각님, 우리가 그런 말들을 꼭 믿어야 하는 걸까요?' 그 말은 입속으로 쑥 돌아들어가 버렸다. 노망은 도장에 대한 의문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미정선각이 이 도장을 다니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얻은 것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며 알아가고 싶었다. 노망미정이 말하고 있는 그 경지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경지에 닿고 싶었고 그럼으로써,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훤히 들여다 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동시에 미정이 닿을 수 없는 경지에까지 올라, 미정을 내려다보고 끌어올려주고 싶었다.

교화는 말하고 있었다. '남을 잘되게 하라'라고,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곧 자기자신을 잘되게 하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교리로 갖고 있는 집단이라면, 그것이 설사 허위에 기반하여 이루어졌더라도, 뭐가 나쁜 것이냐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미정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도장을 나서서 압구정의 거리를 활보하면, 몸도 마음도 깨끗하여, 머리도 깨끗해진 상태로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인을 옆구리에 딱 붙히고 있는 남자였으니 그 이상의 행복한 경지는 또한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또한 들었다. 더구나 미정노망의 집안이나 노망의 돈이나 지위 때문에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를 벗어나서 느껴보게 되는 순수한 애정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비극이 언제 나타날 것인가......

4.2. 상실의 시대와 기회 상실의 추억

"상실의시대를 잘 읽어보았나요?"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노망후각이 주는 책이니 아주 정성스럽게 읽을 수 밖에요"
"그 속에서 도의 발현을 볼 수가 있었어요."
"정말로요?"
"그 "나"라고 하는 인물의 말들과 행동, 그것은 더이상 그 이상의 적정이라는 것이 없을만큼 이치에 합당하고 주변의 공기를 읽어낸 것 같은 것들이에요. 도덕경에 보면, 도는 물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이 나와요."
"교화 시간에도 예전엔가 나왔던 말이었지요"

그랬었나? 들어본 기억이 없었지만, 노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주인공의 행동이 꼭 그러했단 말인가요?"
"주전자라는 틀이 있으면, 물은 주전자 모양을 하고 그 안에 담깁니다. 그리고, 사각의 틀에서는 사각으로, 세모에서는 세모로, 원에서는 원으로"
"맞아요."

적절하게 맞장구를 쳐주는 미정의 덕에 말많은 노망은 정말로, 기쁨에 가득찬 마음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낼 수가 있었다.
"우리가 도장에 있음으로해서, 우리는 도장이라는 틀이 제공하는 환경에 맞춰, 우리만의 도를 찾아내게 되는 것이지, 어디선가 형태가 완전히 굳혀진 '도'라는 대상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지요. 또한 우리라는 존재의 내외부에 맞는 가장 적정의 바로 그 이치에 합당한 것이 다름아닌 '도'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의 주인공은 그렇다면..."
"작가의 탁월한 능력때문이겠지만, 주인공은 자기가 속해있는 환경 속에서 가장 멋있는 것이나, 감동적인 것, 너무 재미있거나 가장 흥미진진한 것을 대사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장 적절한 것만을 선택하고 있죠. 그 환경과 그 상대, 그리고 그 입장, 그 스토리의 상황."
"그것이 바로 '도'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로 진심으로 그 이야기에 의해서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꼭 열어보고 싶었던 보물상자를 여는 키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그것이 바로 도가 발현하는 모습과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도가 발현된 모습에 사람들은 같은 동감을 느꼈던 것이죠. 그래서 그 책은 전세계적으로 1,000만부가 팔려나갔습니다."
노망은 깊은 성찰 속에서 그 말들을 생각해서 꺼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그 자신 과연 그렇게 같이 걸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가장 들었을 때, 좋아하고 이른바, 감동할만한 말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하면서,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녀의 미세한 변화를 따라 해낸 말이었으니. 그 속에 올바른 사색의 흔적이 들어있었을리는 만무하였다. 또한 사실상 하루키라는 그 작가는 감각적인 표현을 극대화시키고, 그 과장된 어법에있어서의 매력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막연히 적절이나 적정, 최적이라는 표현으로 그의 글을 단정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딘가 미심쩍은 사유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화 상대자가 이미 예전부터 감탄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정은 그 순간 그 말에 진심으로 감탄했던 것이다. '맞아요, 맞아' 감탄사를 연발하며, 노망을 한껏 애정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볼에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홍조가 떠올랐고, 촉촉함에 젖은 눈망울이 반짝이며 노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싸안은 그녀의 어깨에서 어떤 진동과 뜨거움이 느껴져오고 있었다.

"나, 지금 노망후각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노망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오고, 몸안의 테스토스테론이 일제히 한곳으로 집중되고 있는 현상을 느끼면서 동시에 가슴이 벌렁이고, 콧구멍이 수축하며, 동공이 일순 확장되는 현상을 겪었다.
"......그런데, 이미, 노망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을꺼야......"
약간 끄는 목소리에 가득히 묻어있는 애교가 마치 문어의 따뜻한 촉수라도 된 것처럼, 노망의 귓볼을 스쳐 달팽이관을 향해서 스물스물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렇다. 이른바 동감이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종류의 화학작용이 엄청난 속도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으로 겪는 일이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노망은 매우 당황하였다. 그리고 왜...~씨자를 붙히는 것일까......
"그렇죠?"
그리고나서 미정의 눈은 반쯤 감기는 듯하여, 그 표정은 고혹스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물대로 여문 육체 그리고 감동의 흥분이 회오리치는 그녀의 머리속......노망은 초속을 벗어난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눈이 내린 도로, 압구정 역으로 접어드는 골목길에서 도로 한복판을 차지한채로 멍하니 약 5분 동안의 긴 침묵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의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제목: 사랑에 빠진 것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연상녀 앞에서의 연애 초짜가 해본 초스피드의 사색

9살 많은 여자라... 9살. 일단, 그녀를 애인이랍시고, 집에 데려가면, 부모님은 뭐라고 할 것인가? 그건 무시하고라도, 군대에 들어가게 되면,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 그녀가 그 2년남짓, 더 멋진 후각을 하나 더 만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과연 어느 보험사가 해준단 말인가? 군대를 제대하고 나면, 그녀는 혼기를 한참 놓친 30중반이 된다. 그녀가 그 기간 동안 선같은 것을 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이 사회가 해줄 수 있는가? 제대하고 취업까지 마치고 나면, 그녀는 30대 후반에 다다르게 된다, 과연 그녀가 그때까지 지금의 아름다움울 유지하리라는 보장은 어느 피부과와 성형외과에서 그 처방을 준단 말인가?

취업을 한 뒤에 자신의 집안형편을 생각할 때, 온전한 가정을 이루거나 안정적인 결혼을 할 수 있기까지는 대략 3-4년은 들 것이다. 그럼 그녀의 나이는 얼추 40이다. 그 때까지 둘간의 사랑이 유효하다고는 그 어떤 생물학자나 사랑의 전문가가 보증서를 지참해서 안심시켜준단 말인가? 그녀를 고생시키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바로 줄 수 없는 그 고통의 나날들은 그녀와 내가 어떻게 버텨갈 것인가?

그 무엇보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살게끔 해주는 돈과는 상관없는 도장에서 우리 둘이 계속 벗어나지 못한채로가 된다면, 도대체 우리 앞날에는 무엇이 있다고 그 어느 도인이나 선인이 미리 볼 수 있단 말인가? .......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생각들 중에는 진정으로 미정을 생각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인가?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말하는 단순한 성욕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성욕만으로 맺어진 관계로는 그녀와의 가장 적절한 관계의 거리는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사랑이 오가도록 이끈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납득할 수가 없다(드라마틱한 요소가 너무 부족하다).

사랑은 왜 이루어지는 것일까. 사람을 사랑으로 이끄는 이유는 여러가지가있을 수가 있는데, 그 중에 한두가지 정도의 조건은 혹,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나, 정작 중요한 것은......(중언부언)......아니다. 사랑에 그 어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은 사랑이다. 아니다. 알고 있기로는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남을 돕는 것이 곧 자기자신을 돕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부정확한 사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녀를 몰고 들어가는 것은 그녀를 돕는 일이 될 수 없다......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답도 제대로 안나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가득히 그의 머리를 채우더니 난수계산과 프로그래밍된 공식의 연산이 완료되어 산출된 결과값으로서의 대답이 나오게 되었다. 그시점의 노망은 인생 전반에 걸쳐서 완결되는 사랑을 바라는, 이를테면, 연애계의 애송이 내지는 풋내기였을 뿐이었고, 그는 너무도 소심하기 그지 없었기에 아래와 같은 아주 엉뚱한 답변이 나오게 되었다. 아마도 이 글을 열심히 읽었던 독자라면, 필히 이 대답 앞에 실망할 터......
"...... 우리 앞엔 아직 많은 시간들이 있고,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해요......"
노망은 그녀 안의 무엇인가가 갑자기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팽팽하게 피어오르던 긴장감이 일순 잠잠하게 가라앉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진 그 무언가는 노망이 잘 상상해낼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래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다른 최적의 것을 찾게 되겠죠......"
그렇다, 노망은 하루키 소설 속에서 항상 지금 최적의 대답이 무엇인가를 척척 알아내는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독자가 생각하는 최적에 호응하는 것이 그 소설 속의 현장에 있는 주인공이 요구하는 최적의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극화와 현실은 결국 동일시 될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을 갖고 있는 것임을.

비극은 왜 그렇게 다가오다 약간 비켜나가는 듯 하기도 한 것일까......

4.3. 불타오르는 발바닥

"매년 이 날이 되면, 1년 중에 가장 기가 많이 내리지요. 자정 12시를 기해서 서울에서 가장 큰 도장인 망우리 도장에 서울의 각 도장에서 온 도인들이 한 곳에 모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그 지역에 가장 큰 도장에 도인들이 모입니다."
"몇 명 정도나 모이게 되는지요?"
"직접 가야 얼마나 되는지 알겁니다. 그동안 모인 도인들이 얼만큼인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개구리 선인은 씨꺼멓고도 둥근 얼굴과 커다란 몸집으로 노망을 내려다보며 능글맞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 사기성 가득한 말들은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나름대로의 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무슨 일을 했었는지는 전혀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이 온 사람들을 제일 처음 대면하는 것은 주로 그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또 하나의 선인과 꽃미남같이 생긴 좀 젊은 선인이 한명 더 있었는데, 그는 왠지 말발이 좀 떨어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교화 시간에 시선을 집중해서 이야기를 진행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그는 전면에 나서는 법이 별로 없었다.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다. 그리고, 도장에서는 가끔 입도식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통해 받는 돈 이외에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돈 같은 것이 있는지, 지속적인 종교적 헌금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그냥 도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돈은 도를 닦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하고, 돈을 혐오한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를 밥먹듯이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돈에 주리고 힘든가를 오히려 확실하게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잠시후, 망우리 도장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였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간 순간, 이 돈이 어떻게 돌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종교조직의 노란색으로 도색된 최신형의 45인승 버스가 노망의 눈 앞에 보였다. 도대체 이것을 만드는 돈은 어디로부터 들어오는 것일까...

도장은 5층 정도의 한나라당 당사 건물 수준의 어느정도 큰 평수를 지닌 건물이었다. 밤 11시를 기해서 그 건물의 주차장에는 같은 도색을 하고, 이 도장이 따르고 있는 교파의 이름이 새겨진 차량들이 수십대 이상 가득히 차 있었다. 건물에 들어가서야, 말로만 듣던 도인들의 규모를 알 수 있었다. 그 미치광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3-4천 이상 움직이고 있었다. 1층의 식당에서 식탁위에 순식간에 음식이 차려지고, 먹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자원봉사자인 무급의 도인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경악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교회 행사라고 하더라도, 거의 완벽한 무급의 봉사는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입도식 때 입는 종류의 하얀 한복을 걸쳐입고, 서서히 계단을 걸어올라가 2층과 3층, 4층, 5층을 채워갔다. 어림잡아 1층에는 천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교화시간을 맞아서 일단, 간략한 문구 해석을 하고, 생활 속에서의 그 문구의 적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바야흐로 12시, 자정, 108자의 주문을 모든 도인들이 눈을 감고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노망은 완전히 다른 세계 속에 침잠한 느낌에 빠지게 되었다. 교회의 경우에는, 부흥회라고 하여 광적인 찬양이나 기도문 낭독, 통성 기도를 통해서 구성원들의 마인드를 조절하고 일종의 흥분상태로 몰아간다. 도장의 이 연중 행사는 바로 교회의 부흥회라고 보면 딱 맞는 것이 된다. 그러나 교회의 부흥회의 그 의도된 광란과는 이것은 약간 차원이 다른 파동을 갖고 있었다. 음이 달리지는 않았으나, 이른바 성조라고 불리우는 것이 주문을 말할 때 붙게 되는데, 그것을 각각 다른 층에서 3-4천에 이르는 사람들이 약간씩 다른 타이밍으로 부르기 시작하니, 눈을 감은 상태에서는 마치 주문의 바다가 바로 앞에서 넘실거리고 있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연출하고 있었다. 바하가 작곡한 종교음악들과는 또한 다르게, 비장미와 웅장함 그리고 무언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느낌과 애환, 사회적 궁핍과 모종의 억압 너머에 잠재한 본성들이 차분히 자기 고백을 하면서 점점 개방되고 있는 그런 기분이 밀려들어왔다.

그 순간 말로 표현도 못할 정도로 뜨거운 느낌이 발바닥 아래로부터 올라왔다.

눈을 뜨고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20여명 중에 한명꼴로 발바닥에 뜨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발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저앉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외의 사람들은 그러한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바닥에 손을 대어보니 분명히 돗자리가 깔려진 차가운 마룻바닥에 불과한데 발바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마치 불이 그 안으로 스며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뒤의 선인은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괜찮아 조금 있으면 괜찮아져'라고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1시간 정도의 암송이 끝나면서, 천천히 그 뜨거움은 가라앉아갔다.

그것은 물론,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암시에 연관되는 최면효과가 다시금 나타난 것이다. 노망은 그러니까 사람들 중의 일부, 즉, 최면 감응이 어느정도 잘 이루어지는 타입의 사람이었던 것이고, 분명히 20분의 1정도의 사람들은 노망과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이 그 어느 종교집단에 가서든, 그 내적인 최면 현상을 똑똑한 음성으로 증언하거나 보여주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종교에 관련된 내적기적이 일어나는 현상을 똑똑히 때마다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종교에 대한 더한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조건반사와도 같이 일정한 환경과 일정한 자극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그리고 그 환경과 자극이 끝나는 시점에 그것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노망은 지금와서 생각한다. 만약, 또한 주변의 신뢰할만한 누군가가 모종의 암시를 제공하고, 망우리의 도교 도장과 비슷한 환경하에서 주문을 수많은 사람들이 암송하는 것과도 같은 현상을 일으켜준다면, 갑작스럽게 발바닥이 불에 댄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마냥 암시된 일이 노망의 내부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감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은 물론, 이러한 최면으로부터 어느정도는 자유롭다. 그러나 아는가, 우리는 언제나 모종의 암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그것. 알마니의 양복이나 크리찬디올의 넥타이, 휴고우먼의 향수가 광고와 그 색채, 상품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매일처럼 암시를 걸고, 그것을 가지게 된 사람들로 하여금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이라고 느끼게끔 이끌어준다는 것을? 붉은 악마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느꼈던 그 모종의 통합감은 끊임없는 암시와 이에 따르는 최면이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박정희가 위대한 지도자라고 끊임없이 매스컴과 사람들이 암시하는 시대를 지나쳐왔던 많은 사람들이 폭력적인 정권으로 경제개발과 반공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해 왔을 뿐이었던 그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지, 비극은 뜨겁게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5. 도(道)를 닦으며, 도(刀)를 팔다

5.1. 미정에게 최고급 커피를

노망미정에게 따뜻하고도 맛있는 커피를 압구정동의 채플린이나 현대백화점 같은 곳에서 사주고 싶었다. 적어도, 그녀 안에 무너져있는 무엇인가를 다시 따뜻하게 불지르고 싶었다. 용기 없이 도망쳤지만, 그럼에도, 노망은 그녀 마음 한 구석의 자기자신을 끌어당기는 것, 그리고, 그녀 자신을 끌어당기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의 미련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뜨거운 느낌이 신체에 오랬동안 머물렀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이를 두고 사탄이 들었다내지는 악령이 씌였다라고 했겠지요."
"도장에서는 신이 내렸다거나 기가 올랐다, 기가 돌았다라고 표현하지요."
그녀의 눈동자가 대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을 보는 순간, 노망은 왠지 모를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정선각은 그러한 일이 없었나요?"
"글세요, 많은 사람들이 겪었다는 이야기들은 들어보았지만, 정작 나는 그러한 것을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요."
뭔가, 그녀보다 한걸음 앞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그녀에게 보란듯이 값비싼 커피 한잔 사주질 못하고 있다. 그녀는 가정형편은 그다지 잘 사는 편이 되질 못해서, 홀어머니는 아침에 장사를 나가는 판이었고, 그녀는 도장에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었다. 그녀는 의통하고 싶은 것일까? 정말로 이 세상을 구원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밖에는 없는 것일까? 그 순간, 그녀가 들고 있던 커피잔이 기울면서, 그녀의 팔뚝으로 뜨거운 커피가 흘러내렸다. 부드러운 앙골라 스웨터 소매에 금새 얼룩이 배여들었다. 소매를 걷는 순간, 그녀의 팔뚝에 기다란 상처자국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건?"
"학교에 다닐때 계단을 잘못 걸어다니다가, 그만, 넘어져서 굴렀어요."
"굉장히 아팠을 것 같은데요? 그냥 구른 정도로 다친 자국같지는 않은데요."
"시멘트 바닥과 난간에 걸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데굴데굴 굴렀어요. 정신없이 구르다보니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누워있었구요."
노망은 그때 그녀의 눈빛이 희미한 혼돈과 원망의 눈빛으로 변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약간의 착란같은 것마저 느껴졌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을 그 때의 노망은 단순한 과장된 제스추어를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간단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의 도화선이 이제 바야흐로 불꽃을 내면서 튀기는 하나의 전조였던 것이다.

노망은 그것도 모른채로 그저, 손잡이가 좀 더 잡히기 쉬운 커피잔이 있는, 그리고, 커피가 쏟아져도, 금새 사방에서 종업원들이 세제를 묻힌 거즈를 들고 달려오는 좀 더 호화롭고 서비스 좋은 커피숍에서 그녀와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다가올 비극도 눈치채지 못한채, 노망은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에 좀 더 몰입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밤늦게 그녀의 집 앞까지 바래다주면서, 그녀가 1-2년 내에 있을 종말에 가까운 사건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일종의 성녀같은 이미지로 어둠에 섞여 집 문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만약, 그녀 앞에 그녀가 원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녀가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몰려들어왔다. 그녀에겐 분명히, 최소한의 객관성이라는 잣대가 교육을 통해서나 삶을 통해서 형성되어 있었지만, 왜, 이 도장에 거하는 것일까, 왜 아무런 신비현상조차 경험하지 못한채로, 그저 도를 닦고 있었던 것일까?

5.2. 이 칼에 대해 아세요?


Vector 마케팅 코리아라고 하는 회사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 지금의 노망은 잘 알지 못한다. 그 당시에 노망은 단지 Presentation 30번만하면, 바로 월급여를 주겠다고 하는 그 회사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았었다. 도를 닦고 있던 기간의 딱중간이었다. Presentation이란 다름아닌 주방용 칼의 세계 제 2인자라 자부하는 Cutco라는 브랜드의 칼을 소비자들에게 약 1시간여에 걸쳐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 세일즈는 텔레마케팅과 방문 판매를 연결한 것이었다. 그 브랜드의 칼은, 이른바, 60회 이상의 재련, 제강을 거쳐 만들어진, 자칭 보검 수준의 칼이었고,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종래의 주방용 칼로 20-30번 썰어서 끊어지는 동앗줄을 그 칼로는 단 1회에 잘라버리는 것이라든가, 가죽을 손에 들고, 작은 나이프로 종이를 자르듯이 가볍게 잘라내는 것을 보여주던가, 그 브랜드의 가위로 10원짜리의 테두리를 오려내는 것 등이었다. 그래서, 완벽한 Full Set 총 16가지의 칼을 설명하고나면, 1시간여는 훌쩍 지나가는 Presentation이 바로, 노망이 해야하는 일이었다.

물론, 하루에 한번씩만 Presentation을 하고, 그 다음에, 30회의 Presetation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만 가져가면, 그에 상응하는 급여가 나온다는 것이 애초에 설명된 내용이었지만, 그들은 영악하였다. 만약, Presentation 중에 100만원 이상을 팔면 인센티브로서 판매액의 10%를 주고, 500만원 이상을 팔면, 판매액의 15%. 그리고, 1,000만원 이상을 팔게되면, 20% 이상을 주는 동시에 월급까지 받을 수 있는 사원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얼핏 도장의 구도와 비슷한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한달 정도에 데려오는 사람에 따라서, 도인들은 자신의 직급을 높혀가며, 일반 도인들과는 상관없는 모종의 수당이나, 모종의 대우 또는 종말에 가까운 시기에 있어서, 무형의 어떤 지위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던가......

이 묘한 일치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 점점 더 도장의 교화의 가르침이나 포덕이라는 도교의 전도행위가 도대체 세일즈와 다른 것은 무엇이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고 체감되기 시작하였다.

다만, 노망이 그 일을 열심히 했던 이유는, 미정에게 최고급의 커피를 사주고, 그리고 부모님께 나름대로 수완이 있는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3집 정도씩만 들리면, 10일이면 충분히 목표치의 Presentation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상, 그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만에 100만원어치를 팔았던 사람들 중에 80%는 역시, 친척들을 부추켜서, 강매를 한 상황이었으니. 사실상 심리학자들이 짠 구도로 말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칼을 판다는 말자체는 나오지 않지만, 새파란 젊은이가 가정용 제품을 판다고 주부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으니, 받는 입장에서는 또한 얼마나 이상한가......(물론, 이 자체도 파악이 되어 있어, 무조건, 주부에게는 '어머니'라는 명칭을 쓰도록 교육받긴 했지만).

그렇게 사람들을 찾아가서, Cutco라는 칼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도중에 노망은 때때로 자기자신에 대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노망도(道)를 닦으며, 도(刀)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다지 좋지 않은 실적의 노망을 약간 혀꼬인 발음으로 질책하는 지점장에게 노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는 잘 못팔아도, 지금 '도'를 닦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것만큼은 지점장님에게도 닦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움에 움추러드는 그를 보며 마찬가지의 웃음을 웃었다.

그다지 교화에 집중하지 않는 노망을 개구리 왕눈이 눈을 하고 노려보는 선인에게 노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는 잘 못닦아도, 지금 '도'를 팔고 있거든요. 그것만큼은 선인님에게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려버리면서 고개를 흔드는 그를 보며 마찬가지의 웃음을 웃었다.

노망은 종교 조직과 세일즈 조직이 도대체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상품에 대한 자신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토대로 물건을 팔아제끼는 것과 종교가 말하는 교리나 신을 믿고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토대로 종교를 전도하는 것. 그것이 갖고 있는 차이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여러번 해보았다. 칼은 칼대로 팔리고 있었지만, 도는 누구에게도 권할 수 없었다. 칼을 설명하는 지식은 1주일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도'에 대한 허무맹랑한 소리는 내부로 스며들어 체화되지를 않았다. 그리고, 노망은 이 사회 속에서 뭔가를 파는 과정 속에서 자기자신만의 도(道)를 닦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결국 자신 앞에 있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비극은 절대로 오기로 예정되어 있는 이상 피해가지를 않았던 것이다.

5.3.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집단이 다른 점


노망이 도장보다 칼파는 곳이 좋았던 이유는 꼭, 그것이 자기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맞는가 아닌가의 측면에 있지만은 않았다.

도장에서 교세 확장으로 건축물을 짓을 때에도 이들은 일반적인 경제의 개념을 벗어난 신자들의 철저한 봉사를 요구했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의 유명한 곳들에도 커다란 도장을 세워두었는데, 포천에 있는 도장에 방문하게 되었을 때 들은 이야기는 귀와 눈을 다시 한번 더 의심하게끔 이끌었다. 민속촌이나 경복궁, 비원 등지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궁이 옛날 조선시대에나 만들었음직한 모양으로 높이 솟아 있는데, 이를 만드는데에 들어간 인력은 오로지 일군으로서 직접 돌을 나르고, 무거운 나무를 나르는 사람들뿐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서 그 누가 그 어려운 사역에 돈 한푼 받지 않고 뛰어든다는 말인가? 더더군다나 그 도장들을 짓는 것에는 철저한 전경에 의한 해석이 꼬리표처럼 달려 있었다. 그 위치나 그 지어가는 순서 자체를 모두 전경에 있는 해석을 토대로 따와서, 일단, 작업 기간이 잡히면, 예산이고 뭐고 없이 각각의 군소 도장들에서 자진해서 일을 하겠다고 하는 일군들을 불러들여 모종의 종교의식을 베푼 뒤에(이제는 그런 의식들이 무엇일지, 여러분들은 아마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작업에 드는 비용을 그 기간 내에 모금하는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기간내에 돈이 모자르거나 일군이 모자라서 일을 연장해서 했던 적은 없었다라는 '암시'를 거는 것과도 비슷한 말을 개구리 선인은 하고 있었다.

그 의식을 통과한 일군들은 또한 보통사람의 10배가 되는 일을 하여도, 절대로 지치지 않고, 하루 종일 거의 쉼없이 일을 한다라고 하는데, 그 말 속에는 단지, 사실을 얘기하는 것뿐만이 아닌 일종의 암시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포천의 도장에는 금이 유선형으로 건물의 윗둘레를 돌아가며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선인은 불교 사원마저도 저것을 칠해서는 안되는데, 우리 도교는 칠하며, 그것은 불교보다도 한단계 높은 지위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불교 사원이 저러한 금칠을 하면, 신으로부터 벼락을 맞는다라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말들은 모두 암시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비아닌 신비 속으로 조금씩 노망을 밀어넣는 말들이었던 것이다.

다만, 칼을 열심히 파는 와중에, 비즈니스에서도 직원과 고객들에게 일종의 암시를 항상 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암시의 비밀을 벗겨가고 있었기에, 노망은 다행히도, 그 신비 현상의 언저리에서 약간은 거리를 두고 선인과 도인들과 미정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강증산이라는 위대한 한국 도교 본류의 인물의 밀도높은 사유가 그들을 통합하고 있지만, 그 통합의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책들은 다름아닌 인간에 대한 기만이었다. 그리고, 설사 '도'라는 것이 신비와 더불어 실체로서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기만을 통해서 이끌려 들어갈 이유는 없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득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깨닫고자 하는 것, 다시 보자면, 구원을 받고자 신을 믿고 영생을 구하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비즈니스나 사회에서의 일련의 성공을 희구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이른바 인간의 '욕심'에 불과하다는 사유가 머리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노망에게 남은 것은 미정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비극으로 다가왔다.

6. 3단계의 비극도

6.1. 1단계 좁은문


도를 도장에서 구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뒤에, 그냥, '정'과 미정 때문에, 그리고 건강에 좋다기에 계속 수도를 하는 마음으로 아주 가벼운 기분과 부담없는 느낌으로 압구정의 곰탕집 2층에 들어가던 어느날이었다. 암시가 풀리지 않았던 탓인지, 컴컴한 방 속에서 10여명의 도인들과 두눈을 감고 30분정도 주문을 외우던 중에 누군가 등 뒤에서 노망의 등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손을 동그랗게 모으고 집중해서 도를 닦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부정을 타게 되고 복을 받지 못한다는 선인의 말들에 적어도, 노망 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 자세를 펴지 않고, 열심히 수도만 하고 있었던 것이 2달반여가 지났는데, 누군가 등을 두드린다면, 그것은 미정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한참이나 먼 자리에서 일어나서 등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것일까? 그러나, 일단은 자세를 풀지 않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 두드림은 뒤를 돌아보라는 의미의 두드림이 아니었다고 느꼈다.

그 두드림은 약 1분간 반복되더니, 갑작스럽게 등 속으로 쑥하고 스며들듯이 들어왔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놀라게 되었다. 감은 눈을 떠볼 수가 없을 정도로 그 현상 자체에 압도당할 정도였다. 손가락 하나가 등의 살갗과 뼈를 뚫고 몸 속으로 들어와 등뒤로부터 몸통을 지나 왼팔 안쪽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휘휘 돌듯이 팔 안쪽에서 그 느낌이 반복되어 일어나더니 마치 화장실 양변기에 휴지를 넣고 물을 내렸을 때, 휴지가 빨려들어가듯이 몸속으로 들어온 그것은 소용돌이를 그리듯이 왼팔뚝 안에서 휘휘 돌더니 손끝으로 빠져 나가면서 사라져 버렸다. 가슴이 뛰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팔뚝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뻔히 눈을 뜨고, 방안에 켜있는 촛불에 비추어 쳐다보았을 때, 주위에서 노망에게 붙어있는 사물이나 사람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무언가 몸밖에서 두드리더니, 몸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왔고, 팔뚝 안에서 소용돌이를 그리면서 손끝으로 새어나가 버린 것이었다.

이른바, 그것 또한 암시에 의한 최면현상이었을까?

아니, 그것은 최면 현상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였다. '기'라는 것일 수도 있었고, '혼'일 수도 있었고, '귀신'일 수도 있었다. 아니, 지금은 모르겠다. 지금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도통 알아차리지 못한채로 지나가고 싶을 뿐이다. 왜냐면, 그 날, 비극의 서곡이 그 첫 웅장한 심포니를 지휘도 없이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 그 얘기를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하니, 사람들이 모두 경탄한 듯이 쳐다보았고, 개구리 선인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더 대단한 사례들을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미정은 두 눈을 반짝이며, 노망의 눈을 쳐다보았다.

밖에 나가 예의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를 걸으려 하는때 미정이 말했다.
"선인님이 도를 닦는데있어서, 이런 행동은 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아니......드디어 식어버린 것일까?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진지하게 선인의 말을 들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 알았어요."
물론, 그 선인은 자기가 그랬다면, '도를 닦는데 서로간의 사랑과 애정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교화를 했을 것이다. 마음 속으로부터 비아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선인님은 재미있는 분이예요. 언젠가는 노자 도덕경을 읽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도장에서 도를 3개월만 닦으며 전경을 읽으면, 노자 도덕경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노망은 미정이 그 비아냥에 동의해주기를 바랬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그분이 한 말은 맞는 말씀이니까요."
어느샌가 그녀는 지식과 신앙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성의 잣대마저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강증산이란 분을 향해 수도를 하고, 마치 예수처럼 진리를 안 사람이라고 믿도록 유도당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선인들은 이것이 진리를 안 사람을 따르는 것일 뿐이지, 그것은 신을 섬기는 종교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게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면 무엇인가요?"
"진리를 안 사람은 바로 진리 자체와 하나가 된 것이라는 교화에서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군요. 우리는 진리를 안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곧 진리를 섬기는 것이지, 그 사람을 신처럼 섬기는 것이 아니잖아요."
"뭐가 다른 것인가요? 절대적으로 틀릴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이미 찾은 사람이 있다라고 말하는 그 자체를 믿어버리는 데에는 더 많은 지식과 인생에 대한 탐색과 지혜와 정보,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과 만나보는 기회라는 것이 필요해요. 어떻게 그러한 충분한 노력없이 도장에서 도닦는 것만으로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또는 진리를 알았던 사람이 있었다라고 믿어버릴 수가 있나요? 그건 확인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곧, 신앙 그리고 종교를 섬기는 것과 다른 것이 없는 일이예요"
"노망 후각, 난 후각의 말을 존중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노망 후각은 나에게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믿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보여준 사람이예요. 난, 노망 후각의 행동과 말들을 그 옆에서 지켜보던 중에 더 많은 나의 믿음에 대한 확신과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거죠?"

순간, 말이 막혔다. 정작, 믿음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었던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그 아이러니 자체에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같은 방식의 사유를 서로가 공유하고 있을거라는 서로간의 착각. 그것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 이야기하는 세계관이다. 그녀와의 사랑은 이미 그 좁은문을 사이에 두고 들어가지 못해 서성거리는 세계에 속해있었다. 그리고, 그녀쪽의 공간은 '도교'의 공간이었고, 노망의 공간은 세속적인 삶의 공간, 비즈니스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두세계가 결정적으로 갈라진데에는 노망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이다. 노망은 그녀의 세계 속에 절벽에라도 외치는 기분으로 외치고 싶었다. 그녀는 단호하게 그 세계 속에 자신을 송두리째 던졌다. 그 속에 노망이 먼저 들어가 부르는 줄로만 알고서?

'그건, 다 오해야! 그건, 다 헛소리야! 그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야! 그 공간은 부재하는 공간이야! 바닥도 없고, 천정도 없어!'

비극으로 가는 첫문이 열리고 등 뒤로 닫혀버렸다. 그리고 그 문을 이제는 다시는 열 수 없었다.

6.2. 2단계 사망유희


그리고 몇일이 지난 뒤, 미정은 자신의 남자친구가 도장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송두리째 노망에게 빠져들 듯이 굴지 않았었던가...... 그리고, 그는 도장에 들어와 선인과 약간의 언쟁을 하더니, 잠시후에 노망에게 조용히 점심을 같이 먹자고 청한 후에 곰탕집으로 같이 내려가기를 종용하였다. 미정은 그대로 도장에 남아 있었다.

6.2.1. 1 층 관문
그 사람은 사망유희에서 보았던 이소룡의 이미지를 노망에게 떠올려주었다. 약간 헬슥한 볼에 몸에 군살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그리고 눈은 잘 알 수 없는 적의와 모종의 체념 비스무레한 것을 품고 있었다.
"이제, 노망씨가 몇살인가요?"
그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22살입니다."
"아주 좋은 나이군요. 이런 곳에 올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글세요. 나이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온 것이 아닙니다."
"......미정이 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참으로, 걔한테 잘 해주셨더군요. 그리고,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었다고 하던데요."
순간, 이소룡이 들고 있던 쌍절곤이 날아와서 뒤통수와 복부를 가격하는 느낌에 빠졌다.
"그건, 증거라기 보다는......"
"나는 30년간 불교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암자에서 수행하고 불도를 닦으면서, 머리 속이 새하예지고, 이른바 궁극의 무언가를 체험했다고 하는 상태에 빠져든 경험이 여러번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반평생 동안 쿵푸와 각종 무술을 배워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마치, 연속극에서 자주 만나는 대사와도 같이, 자기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예정이라는 이야기마저 흘렸다. 노망은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온몸에 피멍이 드는 듯한 고통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노망은 오로지 젊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무공이 없었다. 그리고 상대는 절권도의 달인 이소룡이었다.

6.2.2. 2층 관문
대학교 때 미팅으로 처음 만났고, 연애를 했으며, 오랬동안 불타는 열정으로 서로를 사랑했으나, 어느 순간엔가. 미정이 "도교"에 빠져들었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홀어머니가 돈을 모아 프랑스 유학을 가는 길을 준비했었으나, 갑자기 이 도장에 들어가, 유학도 포기하고, 오로지 "도"를 닦고자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그는 그 질문에 고통에 휩싸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얼이 빠진 바보처럼, 순식간에 모든 공격을 포기하고, 쌍절권마저 바닥에 팽게쳤다.
"미정이가 노망씨에게 굉장히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해주었죠?"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사실, 미정이는 화를 내면 그 누구도 당해낼 수가 없는 여자랍니다. 화난 모습을 아마 한번도 못봤을 거예요. 사천왕처럼 표정이 일그러지고, 사납게 표효하는 고양이과의 덩치큰 야수처럼 변하지요......"
가드를 내린 그에게 발차기를 날리듯 이야기했다.
"저에겐 한번도 그렇게 화를 내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뜻 상상조차 되지 않네요."
그는 씨익 웃었다.

6.2.3. 3층 관문 사망의 문
"미정이가 다쳤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나요?"
그렇다. 노망에겐 전혀 알 수 없는 둘만의 스토리가 있다. 사납게 표효하는 듯한 이소룡이 떠오른다.
"왜 다쳤는지도 이야기했나요?"
그 눈의 응시가 음침하였다. 아니, 그 눈에는 죽음의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계단에서 넘어져서 굴렀다고 했어요."
그의 눈 깊은 곳에서 어두운 기운이 고통스러운 표정과 함께 번진다.
"...그리고 유산을 했다는 이야기도 하던가요......?"
뽀죡하게 가슴에 들어와 박힌 그의 손가락 끝을 느낀다. 그는 표효하며 노망의 온몸을 찢는다.
"아니요......아니요 전혀."
그 다음의 대사를 안다.
"그 아이는 우리의 아이였어요. 그리고, 그 일 때문에 걔는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순간, 노망은 공중을 날아서 땅바닥에 내려꽃혀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미, 바닥에 뻗어 난자하게 피흘리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노망이었다. 이건 영화나 드라마였지, 상상할 수 있었던 현실이 더이상 아니었다.

"지금도, 미정이는 나를 원망하고 있어요. 미정이는 그 때 이후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잊어버렸어요. 고통을 극복하려 한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갇혀버린거죠."
'그녀는 세상을 더이상 바라볼 수 없습니다. 이미 세상을 볼 수 없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그말은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 말은 사납게 표효하며 적을 격퇴한 이소룡에게 당신에게 나갈 문은 없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들릴 것만 같았다.
"나는 여러번 도장에 같이 들어가서, 그곳의 선인들과 대판 싸우고, 때로는 같이 도를 닦기도 하고, 여러모로, 이해하려고도 했었고, 강제로 데려가려고도 했었죠. 하지만, 걔가 그 곳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만큼은 어떻게 변화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뭔지 아나요?"
".......제 3의 눈이 열려서 자신의 전생을 영화처럼 보는 것.....이군요."
"그렇게 해서 자신이 현생에서 고통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찌되었든 모든 것은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난 기다릴겁니다. 걔가 저러다 쓰러질 때까지, 완전히 나자빠질 때까지. 그때...... 뒤에서 받아주려구요. 이제 사업을 물려받으면, 오직, 걔를 위해서만 만반의 준비를 할겁니다."

노망은 상대의 3갑자 이상되는 무공에 완전히 압도당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좁은문마저 없었다면, 그리고, 온전하게 사랑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순간 노망은 어떻게 이소룡과 상대할 수 있었을까? 아니 완전히 가루가 될 정도로 깨져버렸을 것이었다. 영화의 엔딩 자막이 내려가고, 노망에게는 더이상의 화면이 비추어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 앞의 이소룡 역시 영화 밖에서는 죽어버린 남자인지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결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었다.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붙잡고 집으로 향해 걸어가다 돌아보니 그의 중형 세단차가 미정을 태우고 곰탕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노망미정이 유혹한 남자였다기 보다는 그의 유희에 초대된 무림의 만만한 상대였던 것은 혹, 아니었을까......

6.3. 3단계 천국보다 낯선

1주일이 지난 뒤에 도장에 다시 들려보았다. 그리고, 도장과 그녀와 사람들이 그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있음을 느꼈다. 노망은 그제서야, 미정이 불안한 기색을 잔뜩 품은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란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세상과 절연되고 그 상태에 빠진 것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던 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연민이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어, 그녀에게 빵과 우유와 먹을 것을 사주었다. 그리고, 그것들에 천진난만하며 기뻐하며 웃는 모습을 보았다. 마음이 몹시 아파왔다. 그리고, 좁은 문틈 사이로 그녀를 힐끔힐끔 보듯이 곁눈질로 바라보며, 오로지, 동정과 연민으로 범벅된 것일뿐인, 자신을 다시금 연민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행복한가요?"
"네. 근데 그걸 왜 묻지요?"
"나는 이제, 가야겠어요."
"더 도를 닦아야지요."
"이제, 입대해야 되요."
"선인님이 이제 곧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군대 가지 말라고 했었잖아요."
'그렇지만, 가야돼요. 그리고, 만약, 혹시라도 종말이 오고 의통을 하게 되었다면, 나를 찾아줘요.' 그것이 조롱조의 말이 될까봐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이만 갈께요."
"네, 가세요."

빵봉지를 들고, 우유를 마시고 있는 그녀를 뒤에 남겨두고 조용히 거리를 걸어갔다.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 불안한 표정이 노망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왜, 첫번째 남자에게 컵라면을 사주고 보냈듯이, 그녀에게도 그 때 빵과 우유를 사주고 그냥 보내버리지 않았던 것일까? 후회가 몰려들어왔다. 9회말 홈런을 맞게 해준 것이었지 치게 해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소망은 그냥 소망대로 흘려버렸어야 했던 것을.....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의식의 질주 속에서 천천히 눈에 잔뜩 쌓여있는 압구정의 골목길을 다시 쳐다보았다.

'나는 지금 이 길에 왜 서있는 것일까?'

거리는 조용하고, 깨끗한 하얀색으로 메워져 있었고,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것은 천국이 아니면서, 이미지 속에 그리던 천국처럼 생전 처음보는 그런 낯선 곳이되어 노망에게 아무런 방향감각을 선사하지 않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보지도 못했던 천국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 TheEnd --

시시각각으로 노망 의 숨통을 조여오는 도대아 무리들,
그리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뒷걸음질 치는 노망...
멜로... 그의 사랑은 득도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액션... 삼갑자를 넘는 내공의 환상적인...
스릴러...그가 그곳을 어떻게 떠났는가?...
신비...그의 발은 왜 갑자기 불타올랐는가...
종교...인간의 심연을 파고든다...

기대한 것 이상을 볼 생각이면, 그냥 이 페이지를 지워버려라...

주연 : 노망, 미정
감독 : 로만 뿔난스키
제작 : 노망
연출 : 노맨
기획 : 노라망 프로덕션
각색 : [http]Roman
촬영 : 크리스토퍼 놔망
편집 : 노가망
배급 : 롤라망
감수 : 노방
미술 : 로맹
소품 : 노가방
분장 : 노메컵
협찬 : 로만손 시계

3부작입니까...? 매트릭스와 반지의 제왕에 이어 또다른 스펙터클 판타지 무비가 등장했나보군요. 액션, 멜로, 스릴러, 신비, 종교~ 매트릭스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원정
어떻게 씌여질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네요. 혹시라도 기대한 것보다 재미있으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 노망에게 밥사주세요. --Roman
10월 18일자까지의 글의 주된 교훈은, 아무런 소속이 없는(심지어 애인마저 없는) 군대가기전 의 남자에게는 도닦고 있는 여자와의 데이트가 최후의 선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며, 그 메뉴얼의 제작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잊어주세요. hagopa님이 애인이 없었다면, 도닦으시기를 바랬던 글이었습니다. 23일까지 5일이나 남았네요. 아직은 열심히 즐거운 일을 많이 할 때.--노망
미정을 꼬시지 못했다면 무효! --안형진 2003-10-18 20:33:33
꼬시는 중이므로, 무효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름? --노망
미정이 꼬시는 중이므로 무효가능성 있음 --노망
이후 이야기를 올려주세요. 너무 궁금합니다! --프리버즈
다른 곳에서 노망이가 쓰고 있는 중이예요. 그곳에서 연재가 끝나면 바로 이곳에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두집 살림 차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스토리의 줄기는 같은데, 이곳에 씌여질 글과 그곳에 씌여질 글은 장르가 조금 다르답니다.--노망
아, 그렇군요. 씌여질 그날까지 기다리겠습니다. :) 그런데 조금 조심스러운 질문인데, 연재하시는 곳은 어디신지 궁금하네요. 스토리 자체가 궁금하기도 해서요. --프리버즈
가져와서 올려놓았습니다.--노망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은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_ㅜ 으윽.. 소설 이었습니까.. -- Khaosmos
죄송.--노망
아닙니다. ; TableOfContents를 보고 알았어야 하는건데. ; 하지만 확실한건 노망님의 소설은 정말 실감난다는 거네요. 감명받았습니다 :D -- Khaosmos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혹시 즐겁게 읽었다는 이야기라면, 감사하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런데, 밥사주실 수 있을랑가요?--노망
사실은 논픽션인데요. 그러나 사실과는 굉장히 많이 다르고, 의도적으로 다르게 썼습니다. [http]도에대해아세요RoMan버전을 이곳에서의 필명에 맞춰 변경한 것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기쁩니다. 원래 시작했던 곳이 장난치세여서, 잘 키워 쓴 뒤에 다시 가져왔습니다.--노망
이런, 저는 Roman님이 노망님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군요 ;; 하여간에 정말 재밌게 잘 읽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Khaosmos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노스모크에 장문의 글을 주저리주저리 단 거 미안하여요. 나이만 들어서 말이 많아요. 쿨럭--노망
하하, 저야말로 길게 답해주신데 대하여 짤막짤막 끊어서 죄송하죠. :) 전 아직 나이가 덜 차서 말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쿨럭 -- Khaosmos

물의수기분류 소설분류



Powered by MoniWiki
xhtml1 | css2 | rss